예수 믿기에서 예수 살기로 1
한인철, <예수, 선생으로 만나다>
종교가 추문거리로 변한지 이미 오래 되었다. 특히 개신교회는 바닥을 알 수 없는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다. 제동장치조차 없으니 더욱 큰 문제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다양한 분석이 가능하지만 핵심은 분명하다. '본'을 버리고 '말'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 예수의 십자가는 사라지고 피상적인 위안과 욕망을 추인하는 언어가 춤을 추고 있다. 저 높은 곳에 올려진 예수는 더 이상 우리의 비근한 일상에 개입하지 못한다. 1970년대 초 김지하는 희곡 '금관의 예수'를 통해 교회 안에서 침묵을 강요당하는 예수의 비애를 지적했다. 금관이 씌워진 예수는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왕관을 벗겨줄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카타콤베에서 숨죽여 예배를 올리던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선한 목자 예수는 수염조차 나지 않은 젊은이로 그려졌다.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어깨에 메고 돌아오는 예수는 그들에게 경배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고단한 인생길의 동반자였다. 콘스탄티누스 이후 예수는 우리와 구별되는 존재로 격상되기 시작했다. 중세 초기에 그려진 이콘 속의 예수의 눈은 유난히 크다. 부리부리한 눈으로 세상을 살피는 예수의 초월적 시선은 두려움을 자아낸다. 마침내 기독교가 제국의 종교가 되었을 때 예수는 우주를 뜻하는 저 반구형 돔 꼭대기로 높여졌다. 판토크라토르 곧 만유의 주로서 말이다. 더 이상 높여질 수 없을 정도로 높여진 예수가 과연 이 땅에서 의식주의 문제로 애태우며 사는 이들의 벗이 될 수 있을까?
한국 교회의 예수 이해
연세대학교 교목실에서 일하는 한인철 박사는 매년 입학하는 학생들에게 기독교 입문을 가르친다. 비기독교인들이 다수인 강의실에서 예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귀한 기회를 소홀히 할 수도 없다. <예수, 선생으로 만나다>는 그런 그의 삶의 자리에서 나온 책이다. 그는 학생들 특히 비기독교인 학생들이 읽을 수 있는 예수 이야기를 쓰고 싶어한다. 아직 신앙 고백의 자리까지 이르지 못한 이들에게 예수 이야기가 의미있는 담론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저자는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이 책이 겨냥하는 것은 비기독교인 학생들만이 아니다. 기독교인들 가운데서도 교회에서 선포되는 메시지에 공허함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 역사적 예수에 대해 깊이 알고자 하는 사람들, 역사적 예수 연구 결과를 자기 목회에 적용하려는 이들을 염두에 두고 집필되었다.
들어가는 말과 나가는 말을 제외하고 총 10장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의 구성은 매우 교과서적이다. 각 장은 표제와 더불어 작은 글씨의 부제가 붙어 있다. "왜 역사적 예수인가? - 예수믿기에서 예수살기에로", "예수의 자리 – 유대교, 헤롯가, 그리고 로마제국", "예수의 가르침 – 하나님의 나라", "예수의 삶 – 고통의 치유와 공동식사, 그리고 비폭력적 저항", "예수의 동시대인 읽기 – 함께 아파함과 냉혹한 비판",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 – 일벌백계(一罰百戒)", "다시 살아난 예수 –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나님이 된 예수 – 니케아 별장의 야합", "예수 새로 보기 – 선생(先生) 예수", "다시 태어나는 기독교인 – 예수의 길벗". 목차만 자세히 살펴도 이야기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친절하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한국교회가 신앙의 그리스도에 집중함으로써 역사적 예수를 소홀히 다루고 있고, 그 결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강조되고 있지만 예수를 따라 사는 삶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 기독교의 정체성을 결정한 신학적 요인으로 '니케아 신조', '사도신경', '사영리'를 들고 있다. 니케아 신조는 예수가 곧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과 본질이 같다고 고백한다. 이것은 예수가 하나님이 아니라면 인간의 죄를 구원할 수 없다는 신학적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도신경은 예수의 출생, 고난과 죽음 그리고 승천과 재림을 말하지만 정작 예수의 지상적 삶은 통째로 빠져 있다. 사영리(The Four Spiritual Laws)는 CCC를 창설한 빌 브라이트가 요약한 기독교의 핵심교리이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인간 현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길, 영접하는 자만이 구원을 얻게 된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 가지 고백의 공통점은 지상에 현존했던 예수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깨끗하게 소거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수는 고백과 경배의 대상으로 고양되어 나타난다. 예수는 닮을 수도 없고, 닮으려는 희망을 품어서도 안 되는 초월적 존재처럼 여겨진다.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체포되어 17년 동안 갇혀 살았던 서준식은 감옥 안에서 예수를 깊이 연구한 후에 "'종교'로부터 자유로워야 예수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묘한 '아이러니'"(<서준식 옥중서한>, 노사과연, 저자교열판, 2015년 3월 24일, p.246)라고 말했다. 예수가 종교에 갇히는 순간 예수는 침묵하지 않을 수 없다.
김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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