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과 유지
수전 손택은 전쟁의 고통을 보도하는 미디어의 위선적 성격과 방식을 파헤친 <타인의 고통>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다. 수많은 저작을 남긴 이 미국의 비평가이자 소설가는 글쓰기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 적이 있다. “만약 글쓰기가 고작 나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라고 생각했다면 나는 타자기를 내다버렸을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한 행위다. 작가는 마치 운동선수처럼 매일매일 훈련해야 한다. 좋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나는 오늘 무엇을 했던가?” 글쓰기나 말하기를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보통의 사람들과 달리 그녀는 자신의 글쓰기를 단지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더 높은 가치에 다다르고 그것으로 자신과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나보다.
그녀에 따르면 글을 쓰는 사람은 운동선수처럼 매일매일 훈련해야 하고, 글을 쓰기 위한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에 모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손택의 이 말은 단지 실제로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고 삶으로 진리를 전해야 하는 모든 신앙인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 아닐까? 매일의 훈련과 좋은 상태를 유지하기. 영적인 삶에 대해서도 이 두 가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싶다.
훈련은 머리가 아니라 몸에 생각을 새기는 일이다. 일상에서 드물지 않게 경험하듯 머리로 배운 것은 쉬이 잊을 수 있어도 몸으로 배운 것은 좀처럼 잊지 못한다. 끊임없고 주기적인 반복은 언제 어디서든 그 반복한 행동이 튀어나오게 만든다. 보통의 행동이 눈을 통해 전달된 상황을 뇌가 검토와 판단을 거쳐 손과 발에 명령을 내리는 절차를 통해 실행된다면, 반복 훈련된 행동은 뇌에서의 검토와 판단 과정을 생략한다. 그만큼 빠르고, 그러기에 검토와 판단의 과정에서 발생될지도 모를 유혹마저도 피할 수 있다. 훈련의 결정적 유익은 바로 이 점에 있다. 유혹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
그러나 훈련만으로는 부족하다. 훈련이 어떤 것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더욱 중요한 것은 강해진 그것을 유지하는 일이다.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결국 훈련의 최종적인 목표이기도 하다. 스포츠와 관련지어 말하자면 이것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일이다. 아무리 강하게 몸을 훈련시켰다 하더라도 결정적 순간에 최상의 상태가 아니라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선수들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자주 보게 되듯이 패배는 훈련에 실패한 선수보다는 컨디션 조절에 실패한 선수에게 더 자주, 더 치명적으로 일어난다. 이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 바로 절제다. 시합 전날 절제하지 못 해 당일의 시합을 망친 예는 흔하며, 미래가 보장된 우수한 선수들이 절제에 실패해 몰락한 경우 또한 흔하다.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는 단지 몸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것은 마음과 영혼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니 잠들기 전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은 바로 이것일 것이다. “좋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나는 오늘 무엇을 했던가?” 이 말에 부끄러운 하루가 아니라면 적어도 그 하루만큼은 영적으로 실패한 하루는 아닐 것이다.
“몸의 훈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 훈련은 모든 면에 유익하니 이 세상과 장차 올 세상의 생명을 약속해 줍니다.” (딤전 4:8)
이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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