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돼지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 정부기관 고위간부의 한 마디가 온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더구나 교육을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천명한 국가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의 입에서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는 말과 함께 나왔으니 그 충격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실언이라는 그의 변명은 구차했다. 실수라면 단지 마음속의 생각이 밖으로 흘러나오도록 한 것뿐이었을 것이다. 이 발언이 공분을 일으킨 가장 큰 이유는 이런 식의 생각이 단지 한 개인의 예외적 일탈이 아니라는 공감대 때문이다. 관리소장에게 “종놈”이라며 종놈은 주인이 시키는 것만 하면 된다고 욕설을 퍼부었던 강남 고급아파트 주민회장의 갑질도 불과 몇 달 전의 일이었다. 모든 것을 돈으로 판단하고 돈으로 계급을 가르는 사회에서 돈을 닮은 천박한 의식이 사회통념으로 자리 잡게 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개와 돼지를 하나로 묶은 소재의 애니메이션영화도 있었다. 2011년 연상호 감독이 만든 <돼지의 왕>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는 학교라는 공간의 비유를 통해 현 시대가 안고 있는 사회 문제를 충격적일 정도로 통렬하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그 속에서 개는 강자로서 약자의 고기를 먹는 지배계급을 상징하고 있었고, 돼지는 강자에게 지배 받고 먹힐 수밖에 없는 약자의 계급을 상징하고 있었다. 개에게 먹힐 수밖에 없으며 미래에도 결코 개가 될 수 없는 돼지는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비참한 인생들에 대한 신랄한 은유였다. 역기서 개는 돼지와 하나가 되어 천민계급으로 취급당하지 않고 돼지를 지배하는 계급이 되었으니 개에게만은 사정이 다소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어느 쪽에 속하든 결국 모든 인간이 개‧돼지가 되고 말았으니 사정은 앞의 이야기보다 더 나빠졌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2년 후 연상호 감독은 이번엔 믿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던진 사회 고발성 애니메이션영화 <사이비>를 발표했다. 이제 막 개봉하게 될 그의 최초 실사영화 <부산행> 역시 그다운 문제의식을 충분히 담고 있을 테니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에게 익숙한 개‧돼지에 관련된 말은 단연코 예수님의 다음 말씀이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아라. 그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되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마 7:6) 예수님도 이렇게 개‧돼지를 언급하셨다. 하지만 아무리 나쁘다 해도 사랑해야 마땅한 인간을 개‧돼지 취급하시다니,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을까? 그러나 예수님의 이 말씀은 앞의 이야기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었다. 예수께서 언급하신 개와 돼지는 진리를 무시하고 멸시하는 사람들이었다. 더 나아가 진리를 전하는 사람을 짓밟고 물어뜯을 만큼의 힘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실제로 예수께서는 이 개‧돼지들에게 짓밟히시고 물어뜯기시지 않았던가. 예수님의 시선은 자신보다 아래라고 여기는 계층을 개‧돼지로 취급했던 권력자의 시선이 아니라, 지위와 권력으로 진리를 외면하고 멸시하는 부류들을 향한 핍박 받는 저항자의 시선이었다. 그러니 만일 우리가 어쩔 수 없이 개‧돼지를 입에 올려야 한다면 우리 역시 예수님의 본을 따라 아래를 향해서가 아니라 위를 향해서 그리 해야 할 것이다. 성경에 그려진 예수님은 온유하신 분이긴 할지언정 온순하신 분은 아니셨다. 그분은 권력자를 향해서 감히 무례한 욕지기를 내뱉으실 수 있으셨던 분이셨다. 거침없이 뻔뻔스럽게 진리를 가로막고 불의를 행하는 자들, 애꿎은 개와 돼지에게 실로 미안해해야 마땅할 인간들이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심판을 피하겠느냐?” (마 23:33)
이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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