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진경 목사의 영화일기
《컬러 오브 더 크로스》 (Color of the Cross, 2006)
“올 가을 한 영화가 우리에게 신앙의 색깔이 무엇인지를 묻게 될 것이다.” 이 문장은 예수님의 생애를 다룬 한 색다른 영화의 예고편 카피문구였다. 그리고 과연 《컬러 오브 더 크로스》, 즉 ‘십자가의 색깔’이라는 제목의 영화는 말 그대로 확연하게 ‘색이 다른’ 영화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에서 흑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아이티계 미국인 장-클로드 라 마레(Jean-Claude La Marre) 감독이 예수님에 관한 그의 영화에서 예수님 역에 흑인 배우를 내세우는 파격적인 시도를 선보였던 것이다.
영화 《컬러 오브 더 크로스》는 예수님의 생애 중 마지막 48시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영화 속의 예수님은 흑인이시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지금까지 줄곧 백인이 도맡아 왔던 예수님 역을 흑인으로 대체하여 보여주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영화는 예수님을 흑인 유대인이자 소외된 아웃사이더, 핍박받는 자로 소개하면서 인종주의와 차별의 모티프로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해석한다. 흑인 배우가 예수님으로 등장하는 것은 그 자체로 어느 정도 정서적인 충격을 준다.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몇몇 예술작품에서 종종 예수님이 해당 인종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말하고 행동하시는 분으로서의 동적인 이미지는 예수님과 관련하여 거의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영화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된 이유 중 하나를 그가 흑인이기 때문이라는 인종적인 문제로 접근한다. 이와 관련하여 직접 예수를 연기한 영화의 감독 쟝-클로드 라 마레는 자신의 영화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영화는 흑인 예수에 대한 스파이크 리 식의 논쟁적인 영화는 아니다. 미국의 흑인들은 자신의 피부색과 다른 신을 믿는 유일한 사람들이며, 그들에게는 대안이 필요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컬러 오브 더 크로스》는 저예산의 독립영화로 제작되고 개봉되었다. 개봉되자마자 영화의 홈페이지는 백인 인종주의자들에게 공격을 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예상했을 감독은 다음과 같은 말도 했다. “우리 영화는 크리스천을 분열시키는 게 목적이 아니다. 시선을 넓히고자 할 뿐이다. 여러 세기에 걸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에서 묘사한 예수의 모습만이 받아들여졌다. 우리는 대안적인 이미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핍박받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신의 모습과 일치시키고자 하는 시도는 결코 낯선 시도가 아니다. 예수님에 대한 서로 다른 묘사를 담고 있는 네 개의 복음서들은 이미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을 자신들의 절박한 상황에 일치시키기 위한 시도의 결과물이었다. 모든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그리스도들은 자신들이 감정이입할 수 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찾고 그렸다. 그리고 이 시도를 가능하게 만드신 분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셨다. 성육신(成肉身), 스스로가 인간과 똑같이 되심으로써 하나님은 인간이 자신과 같은 모습으로 하나님을 상상하는 것을 허락하셨다. 인간이 된 신이신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을 느끼고, 하나님께 다가가고,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을 허락하신 것이다. 그러니 그 예수님을 자신의 모습으로그리고 사랑하고자 하는 시도가 어찌 신성모독이요 불경일 수 있을까?
예루살렘에서 하루하루 숨어 다니는 예수님의 모습과 함께 영화는 왜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것을 그다지도 견디지 못하는가를 묻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도마는 흑인 예수님께 질문한다. “다르다는 것은 어떤 기분인가요?” 그러자 예수님은 웃으시며 대답하신다. “도마야, 내 아버지의 눈에 우리 모두는 다르고,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같단다.” 타인의 낯섦을 불편해하고 보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편안하고 안전하고 비슷한 다수 쪽에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예수님의 삶은 언제나 불편하고 불안하고 낯선 소수를 위한 삶이었다. 그러니 무엇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선(善)인지는 명백하다. 결국 어느 편에 서느냐의 문제일 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해야 할 선한 일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그것은 그에게 죄가 됩니다.”(약 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