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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88]
 
 
 
     
 
 
 
작성일 : 24-01-07 00:41
   
자발적 디그로쓰
 글쓴이 : dangdang
조회 : 32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0655 [79]

 

자발적 디그로쓰 

 

  해가 바뀌는 즈음이면, 삶의 흐름과 시류를 진단하는 기사가 만발하게 마련이다. 온갖 여론조사와 전문가 의견을 앞세우고, 통계와 과학적 검증을 내세우는 터라, 관심을 기웃거리게 마련이다. 선구안(先驅眼)으로 제시하는 대안을 외면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눈길을 주면 나름의 눈썰미에 탄복한다. <한국교회 트렌드 2024>도 같은 경우다. ‘수축의 시대에서 교회가 생존할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을 강조하며, 위기의식을 부채질한다.

 

  10대 트렌드를 보면 우리 사회의 세태 변화와 밀접하게 관련되고 있다. 구속받기보다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추구하기 위해 교회를 벗어나려는 사람들을 말하면서도 딱히 어떻게 붙잡아 둘지 묘안은 없다. 젊은이들에게 관심이 높은 데 반해, 그들은 쫓아가면 도망가는 세대라며 답답해한다, 하긴 ‘각자도생, 혼족, 더치페이, 혼밥, 혼여족(혼자 여행), 솔플러(혼자 게임)’라는 세대의 특징이 교회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11명의 필자가 지혜를 모은 10가지 현상 중 열 번째는 더 이상 요즘 세태를 변명할 수 없다. 홀로가 아닌 함께 해야 할 공동의 운명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기후교회’(Climate Church)라는 표제가 주목을 받은 배경이다. 창조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앞장서는 교회의 역할을 제시한 것은 교회의 존재감을 넘어 세상의 생존 문제이다. 아직 보편화된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교회가 창조절을 제정하고, 녹색교회 운동을 지향하는 일은 그만큼 우리 시대가 부닥치게 된 현실적 고민이 담겨 있다.  

 

  교회는 자신의 성장에 분주하고, 부흥을 열망했지만 사회적 공감을 얻지는 못하였다. 사회적 정의와 의지는 오히려 탈성장을 지향한다. 그동안 ‘지속가능한 발전’과 ‘녹색 성장’이 대안이었다면 <디그로쓰>(요르고스 칼리스 외)는 거꾸로 간다. 지구를 식히고 세계를 치유할 단 하나의 시스템은 바로 자발적 가난이라는 것이다. 생태계에 피해와 부담을 주지 않는 소박한 삶은 유일한 대안이며, “파이 자체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산과 소비를 지금과 다른 방식으로 할 것은 물론, 생산과 소비를 더 적게 해야 한다. 

 

  쉽게 말해 낭비벽을 모른 척해온 내 삶의 패턴을 바꿔야 한다. 당장 기후 위기를 고민한다면 남을 탓할 일이 아니다. ‘덜 시원하고 더 춥게 살며, 육식을 덜 먹고, 채식을 늘이며, 자동차 배기량을 낮추고, 자주 걸어야 한다.’ 소비수준이 세계적인 우리나라는 탄소배출이 세계 7위로, OECD 국가 중 증가 속도가 가장 빠르다. 나오미 클라인은 인간의 활동 때문에 지구 온도 상승 속도가 자연보다 10배나 빠르다면서, 속도를 줄일 것을 재촉한다. 적극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지 않으면 인류가 공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것이 또 있다. 인간의 분주한 삶 그 자체이다. <슬로우 영성>(존 마크 코머)은 대부분 사람들이 미친 속도로 살아가게 된 원인으로 시계를 꼽고 있다. 베네딕트 수도회가 처음 해시계와 12세기 들어 기계장치 시계를 만든 이유는 느리게 살고, 기도하며 살려는 목적이었다. 그런데 하루 일곱 번 기도 시간을 정하려고 만든 시계는 기대와 달리 오히려 사람들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스마트폰의 중독성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창조질서 회복이란 담론은 거창하지 않다. 욕망을 줄이고, 속도를 늦추라는 것이다. 창조세계는 결코 바삐 돌아가지 않고, 하나님의 시간은 느릿느릿 하며, 창조의 공간은 한가롭다는 것이다. 이제 눈을 감고 하늘의 사인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요르크 징크는 ‘창조의 마지막 날에’라는 글에서 이렇게 풍자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하지만 수백만 년 후에는 인간이 충분히 똑똑해졌다. 인간은 말했다: 누가 하나님에 대해 말하느냐? 나는 이제 내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겠다. 

그는 그렇게 하였고, 이제 세상의 마지막 7일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날 아침, 인간은 자유롭고, 아름답고, 기쁘기로 결심하였다. 더 이상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 인간으로써 살기로. 그리곤 무언가를 믿어야 하므로, 그는 자신의 자유와 행운, 돈과 발전을 믿고, 계획과 안전을... 자신들의 안전을 미사일과 폭발물로 채웠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인간이 하나님 없이 살기로 하면서부터 인간의 과학, 문명, 물질과 탐욕은 오히려 우리 세상을 무질서로 만들어 가고 말았다. 점점 혼돈, 공허, 어둠이 깊다. 명심하라. ‘시작’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마침’에도 우리 하나님이 되신다(계 22:13).

 

송병구/색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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