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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113]
 
 
 
     
 
 
 
작성일 : 23-08-03 00:40
   
어머니의 찬송
 글쓴이 : dangdang
조회 : 54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9874 [97]


어머니의 찬송

 

코로나로 인해서 대면 예배를 보지 못한 탓에 한동안 헌금 특송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대면 예배가 시작되면서 올해 4월 말경에 특송 차례가 왔다. 그때는 온 세상이 나뭇잎과 꽃으로 새로운 옷을 지어 입는 아름다운 계절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과 그분이 창조하신 세계를 노래하는 79장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특송으로 택했다. 

 

두 달 후에는 요즘 내가 즐겨 부르게 된 401장 “주의 곁에 있을 때”를 노래했다. 이 찬송은 “빠른 세상 살 동안” 인도하여 달라고 간구하는 찬송이다. 나는 요즘 나이가 들면서 한 해가, 아니 계절이 빠르게 지나는 것을 의식하며 아쉬워하게 되었다. 

 

그런데 특송을 위해서 이 찬송을 연습하는 중에 어머니가 자주 부르시던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가 생각났다. 어머니는 이 찬송을 1절에서 4절까지 외워서 가정예배나 구역예배에서 막힘 없이 노래하셨다. 이 찬송은 주님의 인도를 간구하는 어머니의 기도였으며 신앙 고백이었다. 

 

“1절—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후렴)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2절—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3절—내 주는 자비하셔서 늘 함께 계시고, 내 궁핍함을 아시고 늘 채워주시네. 4절—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 불변하시니, 그 나라 가기까지는 늘 보호하시네. 

 

우리 집은 가난한 소작농이었다. 그런데 우리 가정의 큰 문제는 아버지가 아파서 몸져누우신 것이었다. 힘든 일을 감당하는 장정이 꼭 필요한 농가에서 가장이 누워있으니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내가 출생하기 전후에 아프시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되던 해 3월에 돌아가셨는데, 나는 아버지가 지게를 지시는 것을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일제 강점에서 벗어난 후 6·25를 거치는 동안 한국의 농촌은 가난의 밑바닥을 치고 있었다. 보리고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먹을 것조차 부족했다. 가장이 건강해서 일을 해도 입에 풀칠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남편이 병석에 누웠으니 여자 혼자서 농사를 짓고 어린 네 자녀를 키워야 하는 어머니는 앞이 캄캄했을 것이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어머니는 교회에 나가서 주님을 붙드셨다. 어머니는 십자가 밑에 나아가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셨다. 그리고 자비로운 주께서 함께 하시고 보호해 주실 것을 믿으셨다. 어머니가 즐겨 부르시던 찬송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는 구구절절 어머니 자신을 위한 간절한 기도였고 어머니의 신앙 고백이었다.

 

믿는 자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은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와 찬송을 받아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머니가 구하시지 않은 장수의 복까지 주셨다.

 

어머니의 삶에서 보는 것처럼, 고통 가운데서 우리의 신앙이 견고해지고 뜨거워진다. 이러한 고통의 긍정적인 면에 주목해서 “고통의 신비”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평화롭고 행복할 때 우리는 나태해지고 우리의 신앙이 퇴보한다. 우리 이웃 동네에는 <행복한 교회>라는 이름의 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의 목사는 행복이 신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행복의 역효과를 모르는 모양이다. 

 

내가 1970년대에 지상의 낙원이라고 부르는 호주에 가 있을 때, 재물의 복을 받은 그곳 사람들이 참 행복해 보였다. 거기서 목사들은 고통에 대한 설교는 하지 않고 풍요로운 삶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만을 강조했다. 그때 호주교회는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다. 교인들이 줄어들어서 교회를 유지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같은 지역에 있는 감리교회와 장로교회가 연합해서 예배를 드렸다. 

 

호주에 가기 전에 나는 감사가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풍요로운 삶에 대해서 감사하는 호주교회가 침체의 늪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감사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난한 나라에 살았던 나는 고통 가운데서 몸부림치는 자들을 도와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사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호주교회의 쇠퇴를 보면서 재물의 풍요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는 성경 구절들이 눈에 새롭게 들어왔다.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예수님은 공관복음서들에서 영생의 길을 묻는 부자에게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막 10:23)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재물에 대한 욕심이 십자가의 고난을 감내하신 예수님을 따르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재물에 집착할 때 우리는 이기심에 사로잡히고, 재물로 인한 행복에 취할 때 우리의 신앙이 침체하기 때문이다. 나는 호주교회에서 그런 것을 보았다. 그리고 가난을 벗어나서 재물의 풍요를 구가하게 된 한국 사회에서도 정신적인 나태와 신앙의 침체를 본다.

 

이제 소비가 미덕이라고 말하는 우리나라에서도 고난에 관한 설교를 듣기 어렵다. 교인들은 유모어에 능한 부흥강사를 선호하고, 어머니가 부르시던 고난에 대한 찬송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교인 수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교회의 퇴보가 단지 재물의 풍요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것이 교회를 쇠퇴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들 가운데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370장 찬송을 열심히 부르시던 어머니의 순수하고 뜨거운 신앙이 부럽다. 어머니의 추도일뿐 아니라 평소에도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찬송을 부르면서 어머니의 기도와 신앙 고백을 되새겨야겠다.​ 

 

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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