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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91]
 
 
 
     
 
 
 
작성일 : 23-07-18 01:14
   
《바더 마인호프》
 글쓴이 : dangdang
조회 : 18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9806 [87]


 


《바더 마인호프》 (Der Baader Meinhof Komplex, 2008)


이진경 목사의 영화일기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폭력을 부정적인 것으로 여긴다. 그리스도인들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서도 폭력 행사가 용납되어선 안 된다는 분위기는 뿌리 깊게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폭력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가장 큰 근거와 이유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다음 말씀 때문일 것이다.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마 5:39) 실제로도 주님은 자신을 향한 그 어떤 폭력에도 대항하지 않고 마치 도살장의 양처럼 그 모든 폭력을 온전히 당하셨다. 산상설교에서 하신 주님의 말씀과 몸소 보여주신 주님의 태도가 이후 역사 속에서 폭력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한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이 말씀의 바탕 위에서 비폭력 평화주의를 주장했고, 마하트마 간디는 실제로 이 비폭력 평화주의를 인도 독립을 위한 투쟁에 도입하기도 했다.

 

그런데 폭력의 행사가 불의에 맞서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라면 어떨까? 더구나 만일 폭력의 행사가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면? 자신에게 주어진 폭력이야 주님처럼 감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강자의 잔인한 폭력에 맞서 내 주변의 약자들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대항폭력뿐인 경우라면? 이런 경우에도 비폭력을 견지하는 것이 옳을까? 우리의 주님 역시 당시 백성들 위에 군림했던 권세에 대항하여 예루살렘 성전에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를 쫓아내고 상을 뒤엎으며 사람들을 몰아내는 폭력적 저항의 모습을 보이시지 않았던가. 불의한 권력과 관련된 폭력 행사의 문제는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바더 마인호프》는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에 걸쳐 전개된 유럽사회의 저항운동의 맥락 속에서 극단적 폭력을 과감하게 사용했던 독일의 사회저항그룹인 ‘적군파’(赤軍派, RAF)의 발생과 활동, 붕괴와 소멸을 그린 영화다. 이 적군파의 지도자였던 바더와 마인호프 두 사람은 당시 시민들을 억압하고 불의를 자행했던 세계 질서에 대항하여 무력으로 저항할 것을 결의한 사람들이다. 적군파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는 구호는 아마도 다음의 문장일 것이다. “돌 하나를 던지는 행위는 범죄가 되지만 천 개의 돌을 던지면 정치적 행위가 된다.” 하지만 적군파의 폭력 행사는 점점 더 심해지고 도를 넘어 마침내는 정부 관료들과 재계 중역들을 납치하고 살해하는 데까지 이른다. 결국 저항의 폭력을 극한의 영역으로까지 실현시켰던 적군파와 그들의 추종자들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영화는 이 모든 과정을 최대한 가치 판단을 유보한 채 끝까지 따라가며 보여준다.

 

과거의 역사를 보여주는 영화는 2시간 반으로 끝이 나지만 그 후로도 질문은 이어진다. 폭력은 그 자체로 악한 것인가? 불의에 대한 저항에 있어 폭력은 어디까지 용인되는가? 나치시대 독일의 양심이었던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는 히틀러 암살에 가담했다 체포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어떻게 목사가 사람 죽이는 일에 가담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그의 대답은 이것이었다. “만일 어떤 미친 운전사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인도 위로 차를 몰아 질주한다면 목사인 나는 희생자들의 장례나 치러주고 가족들을 위로하는 일만 하는 것이 나의 임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 자동차에 올라타서 그 미친 운전사로부터 핸들을 빼앗아야 할 것입니다.” 미친 운전사를 강제로 끌어내는 것은 분명 폭력이다. 폭력은 항상 불가한가? 폭력이 정의로운 저항의 수단이 될 수 있는가? 만일 그러하다면 어떤 조건에서 그러한가? 결코 쉽지 않은, 그러나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되는 질문이다.

 

이율배반적이게도 그리스도인들은 비폭력을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이라 생각하면서도 정작 신앙의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은 쉽게 정당화시키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십자군 전쟁을 통한 이교도 학살도, 이단자들에 대한 화형도, 사찰의 기물 파손도, 또한 공적인 혐오도, 폭력이 아니라 신앙심의 발현으로 보았던 것이 그리스도교의 역사이고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그리스도인들의 폭력을 목도하는 현실을 포함하여 폭력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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