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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102]
 
 
 
     
 
 
 
작성일 : 13-11-21 15:18
스펄전 설교-창세기(1) 4. 사단의 정복자 그리스도(창 3:15)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37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요”(창 3:15)

오늘 설교야말로 이 지상에 최초로 행해진 복음 설교입니다. 오늘 설교는 기념이 될 만한 설교올시다. 그것은 설교자인 하나님 여호와께 있어서도 그렇거니와, 설교를 듣는 청중들인 온 인류와, 어둠의 권세 잡은 자들에게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의 설교야말로 온 밤을 다해 유의해야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설교올시다.

이 위대한 설교가 인간이 범죄한 후 곧 행해졌어야만 했던 사실은 과연 놀라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아직 범죄한 두 사람 어느 쪽에 대해서도 형벌의 선고가 내리지 아니했건만, 뱀에게 내린 유죄선고의 형태 속에서 하나의 약속이 내려졌던 것입니다. 아직 여자에게도 해산의 수고에 대한 선고가 내리지 아니했으며, 또한 남자에게도 종신토록 수고하는 선고가 내리지 아니했으며, 땅도 아직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낸다는 선고가 내려지지 아니했었습니다.
참으로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약2:13)는 말은 지당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창3:19)고 말씀하시기 이전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마냥 기뻐하셨습니다. 그런즉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가 그토록 신속하게 온 것을 기뻐합시다. 죄악의 밤이 그토록 일찍 감시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자비가 위로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를 찾았던 것입니다.

물론 오늘 본문의 말씀이 아담과 하와에게 직접적으로 들려준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뱀에게 직접 들려준 말씀임이 분명합니다. 이 말씀은 뱀이 저지른 행동에 대한 처벌의 형태로 들려준 말씀입니다. 인간이 타락하던 그날이 뱀에게는 잔인한 승리의 날이었고, 그의 어두운 마음이 할 수 있는 한도까지 자기의 기쁨이 온통 자기에게 충만했던 날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뱀은 자기의 범죄 의욕에 빠져 남을 해롭게 하겠다는 악의를 충족시켰기 때문입니다. 뱀은 하나님의 창조의 일부를 최악의 의미에서 차별했던 것입니다. 그는 새 세계에 죄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의 형상을 가지고 인류에게 인을 쳤습니다. 그리고 반항을 조장하고 범죄를 증가시킬 새로운 군대들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뱀은 자기 속에 음부를 지니고 있는 악마나 알 수 있는 따위의 기쁨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개별적으로 몸소 투쟁에 가담했습니다. 하나님은 뱀이 일시적인 성공을 획득한 바로 그 전투장에서 뱀을 묵살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하나님께서 뱀을 직접 다루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투쟁은 뱀과 사람 사이의 투쟁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뱀 사이의 투쟁입니다. 

하나님은 엄숙한 말씀으로 이르시기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겠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하시기를 때가 차면 한분의 승리자가 일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비록 고난을 당하나 악의 주된 세력을 치고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합니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이것이 보다 더 자비의 위로가 되는 메시지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시험하던 자가 벌을 받을 것이며, 그 벌은 아담과 하와에게는 축복이 되며, 뱀에게 내린 적절한 보복은 아담과 하와에게 자비의 보증이 됨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간접적으로 약속을 주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음의 사실을 말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 타락한 사람아,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너를 위함이 아니다. 또한 너의 후손들을 위함도 아니다. 그것은 나의 이름과 영예를 위함이다. 나의 이름이 타락한 영들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지 않고 모독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로다. 나는 내 이름과 나의 영광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불멸의 영들 가운데서, 업신여김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시험하는 자에 의해 생긴 과오를 일단 재정비하려고 하노라.”
이 모든 것이 비록 너무도 변변치 않은 것 같아도, 만일 우리의 첫 양친부모께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크게 위로가 되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위해 주어진 자비는 우리 자신을 위해, 우리에게 약속되어질 수 있는 어떤 호의보다도, 언제나 더 틀림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 사실을 이해하기에 좀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를 위하는 공로도 존재해야 함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영광은 공로 이상으로 우리에게 소망의 보다 튼튼한 기초를 제공해 줍니다.

자, 이제 우리는 이 최초의 복음 설교에 관해서 주목해 보아야만 하겠습니다. 최초의 신자들은 언제나 이 복음 설교를 떠나지 않고 매어 달려 있었습니다. 이것이 계시를 통해 아담이 가졌던 전부였으며, 또 아벨이 받았던 전부였던 것입니다. 이 단 하나의 외로운 별이 아벨의 하늘에 빛나고 있었습니다. 아벨은 그 별을 쳐다보고 믿었습니다. 그 빛을 따라 아벨은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자기가 치고 있는 가축 가운데 첫소산을 가지고 와서 제단에 바쳤습니다. 그는 몸소 뱀의 후손이 어떻게 여자의 후손을 증오하고 있는가를 증명했습니다. 그의 형이 아벨의 간증을 인해 아벨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제7대손 에녹이 비록 재림에 관해서는 예언했지만, 초림에 관해서는 아무런 새로운 것이라고는 언급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이 한 약속만이 인간의 유일한 소망의 말로서 남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아담 앞 에덴의 문 안에서 점화된 횃불은 온 세상의 모든 믿는 자들에게 다 비추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 노아에게 말씀하실 때에 더 많은 빛을 밝혀 주고, 또 자기가 내린 언약의 계시를 새롭게 하고 확대하기를 질겨하셨습니다. 홍수 이전에 살았던 백발이 성성했던 조상들은, 지금 우리 본문이 말하고 있는 신비로운 말을 즐기고 의탁하다가 믿음 안에서 잠들었습니다.
그러나 형제들이여, 이 본문의 희미한 계시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주의해서 이 본문의 말씀을 생각하신다면, 이 본문은 놀랍게도 충만한 의미로 가득차 있음을 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오늘 아침 내가 이 본문을 교리적으로 다루려고 했었더라면, 그것이 모든 복음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에게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이 본문을 교리적으로만 따지려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하나의 도토리나무가 도토리 열매 안에 들어 있듯이, 이 본문 속에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형성하고 있는 위대한 진리들이 들어 있습니다. 여기에 성육신의 장엄한 신비가 있음을 유의해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그 여자의 후손이올시다. 어떻게 성육신이 가능하는가에 대한 암시가 애매하게 주어져 있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아들들이 보통 출산하는 방법대로 탄생하지는 아니했습니다. 마리아가 성령의 덮으심을 받았습니다. 그 여자에게서 출생한 “거룩한 것”이 인성에 관한한 오직 그 여자의 후손일 따름입니다.
기록하였으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마1:23)고 하였습니다.
이 약속이 분명히 가르쳐 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자가 한 여자에게서 나올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또 유의해서 관찰해 보면, 이 약속은 구속자의 잉태와 탄생의 하나님의 방법을 예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또 여기서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는 두 후손에 관한 교리도 있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는 하나님 편에 서서 뱀을 대항하는 여자의 후손이 있는가 하면, 항상 악에 속해서 오늘 이 순간까지도 악에 매여 있는 뱀의 후손도 있음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와 사단의 회당은 함께 공존합니다.

우리는 아벨과 가인, 이삭과 이스마엘, 야곱과 에서 등이 함께 있는 것을 지금도 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 육을 따라 난 사람들로서 그들의 아비는 마귀였으며, 그의 아비가 행하던 일을 그들은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중생한 사람들로서 성령을 따라 출생해서 그리스도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살며, 여자의 후손인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면서 뱀과 뱀의 후손과 열심히 대항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이 본문에는 또한 그리스도의 수난이라는 위대한 사실이 분명하게 예언되어 있습니다.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말씀들 속에서 우리는 베들레헴에서 갈보리에 이르기까지의, 우리 주님의 슬픔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
이 말 속에는 사단의 왕권의 파괴가 들어 있습니다. 죄를 정결케 씻어버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부활로 말미암은 사망의 파멸이 있습니다. 승천 가운데서 사로잡힌 포로된 자를 인도하는 일이 있습니다. 성령의 강림으로 이 세상에 진리의 승리가 있습니다. 사단이 감금되는 훗날의 영광이 있습니다. 그리고 끝으로 악한 자와 그의 모든 추종자들을 불못에 던지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이 몇 마디 말씀 속에 투쟁과 정복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이 말을 처음 듣는 사람들은 이 말의 뜻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지 모르나, 우리들은 이 말의 뜻이 무엇인지 환하게 다 알고 있습니다. 이 본문이 처음 보기에는 단단하고 냉랭한 부싯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부싯돌은 풍부한 불꽃을 날립니다. 왜냐하면 무한한 사랑과 은혜의 숨은 불들이 그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약속을 인해 무한히 기뻐해야 마땅한 일입니다.

우리의 첫 양친께서는 이 본문의 말씀에서 과연 무엇을 이해하셨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이 본문에서 많은 위로를 받은 것만은 우리가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첫 양친 부모는 그들이 그 당시 그 자리에서 멸망 받지는 아니할 것은 분명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한 후손”에 관해 말씀하시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여자에게서 한 후손이 나려면 하와가 반드시 살아야 할 필연성이 있음을 알았을 것입니다. 이 양친 부모는 만일 그 후손이 뱀을 승리해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면, 그것은 자기들에게 좋은 것을 의미함에 틀림이 없다고 이해했습니다. 첫 양친부모는 후손이 자기들의 파괴의 선동자를 쳐서 거둔 그 승리로 말미암아, 자기들에게 부여되는 어떤 놀랍고도 신비로운 유익이 있음을 분명코 알았습니다. 이들은 이 사실을 믿는 가운데 행했습니다. 해산의 수고도, 피나는 노동의 수고 속에서도 위로를 받았습니다. 나는 아담과 그의 아내가 이러한 신앙을 가지고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갔음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오늘 아침 나는 이 본문을 세 가지 방면으로 다룰까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이 본문의 사실을 주시할 것이며,
둘째로 이 사실과 부합하고 있는 개개 신자의 마음속에 있는 체험을 고려할 것이며,
셋째로는 이 본문과 이에 관련된 사항이 전체적으로 우리에게 부여하고 있는 격려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Ⅰ. 사실. 사실에는 4개의 사항이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께서 이 4개의 사항에 관심을 두고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첫째 사항은 원수가 되게 한 사실이 특이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본문은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한다”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뱀과 여자는 매우 우정적이었습니다. 여자와 뱀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때의 여자의 생각은 뱀이 자기의 친구였습니다. 여자는 뱀과 너무도 극진한 친구라서 뱀의 충고 따위를 받아들여 하나님의 명령을 깨뜨리며, 또 이 간악한 뱀의 꾐에 빠져 위대한 창조주에 관해 반감을 갖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금 이렇게 말씀하실 때에 여자와 뱀 사이의 우정관계는 이미 어느 정도 끝장나고 말았습니다. 여자와 뱀을 하나님께 고발할 때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3:13)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런대로 좋았습니다. 그러나 죄인들의 우정은 오래 가지를 못합니다. 그들은 이미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이미 시작한 투쟁 속에 들어오셔서 이들을 은혜롭게 취하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들의 불화를 최대한으로 이용해 나갈 것이리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단은 인간의 후손들이 자기의 동맹자로 될 것으로 계산했으나, 하나님은 이런 언약을 음부로 가지고 파괴할 것이며, 사단의 세력과 대항해 싸우는 한 후손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최초의 선언을 보게 됩니다. 그 선언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와 사단의 폭정을 대항할 경쟁적인 왕국을 세울 것이며, 악과 대항해서 싸워 결국 어두움의 권세 잡은 자를 천신만고 끝에 승리하도록 할 것이며, 후손의 마음에 악과 싸울 적개심이 생기도록 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거룩한 성령께서 하나님의 이런 계획과 목적을 넉넉히 수행하셨습니다. 그것은 영화로우신 인자가 타락한 천사와 투쟁을 벌인 것으로 된 것입니다. 사람을 사단의 원수와 사단의 정복자로 삼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악한 자를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여자가 한 것은 다만 악한 자를 미워하는 것뿐임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여자가 그렇게 악한 자를 미워할 이유는 많습니다. 여자가 이 뱀을 흔히 생각할 때마다 자기가 그의 악의에 차고, 사기성이 농후한 말을 들었던 것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여자의 후손은 한층 더 이 악한 자에 대한 원수심이 더 불타올랐습니다. 나는 육신의 후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롬9:8)라고 말했으니까요. 여기서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나온 육신의 자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자손을 의미합니다. 곧 그리스도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이 영의 자손들을 여러분이 어디서 만나든 그들은 빈틈없는 증오를 가지고 뱀을 증오합니다. 우리 영혼에서부터 사단의 온갖 행위를 파멸해야 할 것이며, 이처럼 가련하게 투쟁하고 있는 우리의 세계에서, 사단이 심어 놓은 온갖 악을 뿌리 뽑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분은 여자의 후손입니다. 영화로우신 그 분입니다.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을 말씀하실 때에, 많은 후손을 말하는 복수로 말씀하시지 아니하시고, 단 하나의 단수 후손을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도 그 여자의 후손이 어떻게 마귀와 그의 모든 간계를 증오하셨는가를 알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와 사단은 원수입니다. 그리스도는 마귀의 소행을 파멸하고, 그에게 속박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구출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 목적을 위해 그리스도는 탄생하셨습니다.
이 목적을 위해 그리스도는 사셨습니다
이 목적을 위해 그리스도는 죽으셨습니다.
이 목적을 위해 그리스도는 영광 가운데로 들어가셨습니다.
이 목적을 위해 그리스도는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는 어디서든 그의 대적을 찾아 내시사 그를 철저히 파멸하시고, 그의 소행도 사람들 가운데서 철저히 멸하십니다. 이렇게 두 후손 사이에 원수가 되게 조처하신 것은 자비의 계획의 시작입니다. 이것은 은혜 계획의 최초의 행위올시다. 성경은 이 여자의 후손에 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왕이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으로 왕에게 부어 왕의 동류보다 승하게 하셨나이다”(시45:7)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예언은 역시 사실화하는 것인데, 다시 말하면 이것은 승리자의 강림입니다.
약속에 따라 오는 여자의 후손이 자기의 명분을 끝까지 싸워 유지하면서 뱀을 대적할 것입니다.
미가 선지자는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그러므로 임산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미5:2~3)라고 말했습니다. 여기 선지자의 말은 축복받은 여자가 베들레헴에서 출생했던 어린 아기를 가리키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한 아들을 임신해서 출생한 것은 여인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여자의 아들에 관해서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9:6)고 노래합니다. 베들레헴의 그날 밤 하늘에서 천사가 노래할 때, 여자의 후손이 나타나서 그가 빛을 보는 순간, 옛 뱀 마귀가 가능하면 여자의 후손을 죽이고자 헤롯의 마음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를 보호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에게 손을 대는 누구에게도 패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30년 후에 실제로 활동의 무대에 나타나셨을 때에, 사단이 발 앞에서 마주 만났습니다. 여러분께서도 광야에서 생긴 시험에 관한 이야기와, 여자의 후손이 어떻게 처음부터 거짓말쟁이었으며, 사단과 싸우셨던가를 잘 아실 것입니다. 마귀는 아첨, 적의, 간교, 거짓의 무기를 가지고 예수를 세 번이나 시험했습니다. 그러나 무적의 승리자는 조금도 상처를 받음이 없이 서 계셨으며, 광야에서부터 원수를 추방했습니다. 그 후 우리 주님께서는 자기의 왕국을 세우셨으며, 모든 사람을 한사람씩 차례로 자기에게로 불러들이셨으며, 원수의 나라에서 전투를 빌었습니다.

주님은 여러 곳에서 귀신을 추방하셨습니다. 주님은 사악하고 더러운 귀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행16:18, 눅8:29, 막5:8 참조)고 했습니다. 그 때 귀신은 추방되었습니다. 군대 귀신이 그 앞에서 도망쳤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임재의 공포에서 피하고자 그들 스스로가 돼지 속에 숨기를 오히려 간청해 왔습니다.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마8:29)라는 외침은, 그리스도께서 귀신들이 괴롭히고 있던 육체로부터 추방시키는 놀라운 일을 하셨을 때 부르짖었던 소리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악한 자를 능히 대항하기에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눅10:1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 제2차적인 개인적 투쟁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사단의 개인적인 공격으로 인해 당하는 겟세마네의 슬픔이 증가했던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눅22:5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임금이 왔느니라”(요14:30)고 주님은 말씀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굉장한 투쟁입니까? 사단은 그리스도 안에서 취할 것이란 아무 것도 없건만, 그래도 그놈은 할 수만 있다면 그리스도의 위대한 제사를 완성치 못하도록, 그리스도를 다른 곳으로 인도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마치 큰 핏방울 같은 땀을 쏟으시며 땅에 쓰러져 괴로워하셨습니다. 이것은 다 주님께서 원수와 투쟁하는 관계로 생기는 일이었습니다. 그 후 우리의 승리자께서는 모든 전쟁 중 최후의 전쟁을 시작해서, 결국 그 전쟁을 뱀의 머리를 상하는 것으로 승리를 굳혔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정사와 권세를 파멸해서 이것을 공개리에 전시하시기까지 싸움을 끝내지 아니하셨습니다.

“지금 암흑의 시간은 지나가고
그리스도께서 통치권을 행사하도다.
보라 그 큰 참소자가 자기 보좌에서 추방되어
더 이상 통치를 못하게 되었도다.“

우리의 영화로우신 하나님은 이 투쟁을 자기의 후손 안에서 계속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전합니다. 모든 설교가 다 음부의 문을 뒤흔듭니다. 우리는 죄인들을 성령님의 능력으로 예수님에게로 인도합니다. 새로 믿는 모든 개심자는 사단의 강력한 성벽에서 깨어져 나온 하나의 돌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디서나 악한 자가 정복을 당하며 계시록에 있는 요한의 말이 성취될 날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나고”(계12:9~10)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한 사람의 승리자를 약속했습니다. 이 승리자는 여자의 후손인데 사단과 이 후손 간에는 영원한 전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승리자가 오셨습니다. 남자 아기가 탄생하셨습니다. 비록 용은 여자와 겨루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지키고 있는 여자의 후손의 남은 자와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전투는 주님에게 속한 것이라서 승리는 그 이름이 충성되고 참된 자라고 하는 그리스도에게, 또 의로 심판하고 의로 투쟁하시는 그리스도에게 귀착됩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나오는 세 번째 사실은 우리의 승리자의 발꿈치가 반드시 상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본문에서 승리자라고 분명히 말하지는 아니했고, 다만 여자의 후손이라고만 했습니다. 내가 이 사실을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요? 여러분도 잘 아십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생애 가운데 그의 발꿈치, 다시 말해서, 그의 인격의 하부구조인 그의 인성은 영구히 고난을 받아온 것을 여러분은 잘 아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질병과 슬픔을 지고 가셨습니다. 그러나 발꿈치가 상하게 된 때는 주로 언제인고 하니, 그리스도의 육체와 정신 양면에 걸친 그의 모든 인성이 괴롬을 받던 때며, 그의 심정이 죽음에 대해 심히 슬퍼한 때며, 그의 원수들이 그리스도의 손과 발에 못을 박던 때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당하신 죽음의 고통과 수치를 감내하실 때였습니다.
여러분, 피와 먼지로 온통 물들 저 십자가 위에 계시는 여러분의 주와 여러분의 왕을 보십시오!
거기 보니 심히 잔인하게 상처받은 그의 발꿈치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귀하신 예수의 시체를 내려다가 향을 바른 흰 세마포에 싸서 요셉의 무덤에 넣을 때, 말하자면 하나님이 거할 관을 다루면서 마냥 울었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시기는 하셨지만”(사53:10) 하나님께서 그를 직접 상하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마귀가 헤롯, 빌라도, 가야바, 유대인들, 로마인들 등 이 모든 사람들을 자기의 도구들로 풀어놓아, 마귀도 알고 있는 대로 그리스도인 주님을 해하게 했던 것입니다. 결국 주님은 옛 뱀에게 상함을 받은 것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사건의 전모입니다! 그러나 상함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의 발꿈치였지 그리스도의 머리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승리자는 다시 살아나십니다. 상처는 치명적인 것은 아니었으며, 또 계속적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비록 죽으셨지만 그가 무덤에 머물고 있는 순간은 정말 잠깐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은 썩음을 당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장장 고된 하루의 일을 마치고 생기를 되찾는 잠에서 깨어나시듯, 그의 무덤에서부터 일어나시사 완전하고도 귀한 인간으로 다시 나오신 것입니다. 그 순간은 승리의 시간이었습니다! 야곱이 천사를 이기었을때에 그의 환도 뼈를 다쳐 절게 되었던 것처럼, 예수도 단지 그의 발꿈치에 하나의 흉터를 가졌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영광과 미를 가진 채 하늘로 가셨습니다. 보좌 앞에서 그리스도는 전에 죽임을 당한 어린 양과 같이 보였으며, 지금은 끝없는 생명의 능력 안에서 하나님을 향해 사신 것입니다.

네 번째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즉 주님의 발꿈치가 상처를 당하고 있는 중이지만, 주님은 뱀의 머리를 상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 용은 승리자의 발꿈치에 상처를 가하고 있지만 동시에 승리자 자신은 그 상하고 있는 발꿈치를 가지고 뱀의 머리를 짓밟아서,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인해서 그리스도는 사단을 정복했으며, 상처받은 발꿈치를 가지고 그리스도는 상처를 내려고, 꾀를 쓰고 있는 뱀의 대갈통(머리)을 짓밟고 있는 것입니다.
“보라, 그는 지옥의 아들들에 의해 죽지만,
땅도 아니요 하늘도 아닌 어느 공간에 그가 달리시지만,
지옥의 아들의 임금에게 결정적 일격을 가해
세상의 모든 권세를 정복하였노라.”

내 형제들이여, 사단이 죽지는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결국 사단을 죽이고 마실 것입니다. 사단은 회심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결단코 회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마음속에 있는 악의도 자기에게서부터 몰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지금까지 그놈의 머리를 부셔왔기 때문에, 그놈은 그만 자기의 목표를 상실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놈은 인류를 자기 세력하에 포로로 삼으려고 계획해 왔었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사단의 철의 멍에에서 구속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많은 인류를 구해내 오셨습니다. 언젠가 하나님께서는 뱀이 끈질끈질하게 스쳐간 그 흔적에서부터, 온 세상을 깨끗케 하사 온 세상이 하나님의 찬양으로 충만할 날이 올 것입니다. 사단은 이 세상이 자기가 하나님과 선을 다 이겨내는 자기 승리의 결전장이 될 것이러니 생각했지만, 그것은 얼토당토 않는 말입니다. 이 세상은 이미 하나님의 지혜, 사랑, 은혜, 그리고 능력의 가장 장엄한 연극장입니다. 땅은 자비로 찬란해집니다. 하늘 그 자체도 땅만큼 자비로 인해 찬란하지는 아니합니다. 왜냐하면 구주께서 그의 보혈을 쏟으신 곳이 바로 이 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늘의 낙원의 뜰에 대해서는 이런 피의 언급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사단이란 놈은 그가 우리 인류를 그릇된 길로 나아가게 만들어, 인류 위에 죽음을 초래시키기만하면,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사역을 파멸시킬 수 있노라고 확신했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사단은 인류가 차디찬 죽음의 인침 밑을 통과해서, 그들의 육체가 무덤에서 썩는 것을 얼마나 만족해했는지 모릅니다. 사단이 위대한 하나님의 손수 만드신 것을 망칠 수가 있을까요?
하나님은 인간을 기묘한 피조물로 만들었습니다. 그 육체만 하더라도 혈관과 정맥을 서로 교차하게 만드셨으며, 근육과 힘줄을 잇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코에다가 생기를 불어 넣었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말하기를 “아, 인간 속에다가 투약하여서 그가 맨 처음에 만들어질 때 왔던 흙으로 돌아가게 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디 봅시다. 그 발꿈치를 상한 바 있는 우리의 승리자는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시고, 우리에게 그의 모든 추종자들은 역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날 것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사단은 계략을 좌절당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죽음마저도 여자의 후손에 속해 있는, 어느 누구의 뼈 한 조각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땅과 바다에서부터 천사장의 나팔소리로 사람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때는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은 어디 있느냐?”(고전15:55)라는 외침이 있게 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진작부터 안 사단은 부활로 인해 자기의 머리는 부서진 것을 이미 느꼈습니다. 이를 인해서 우리는 하나님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립시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마귀는 우리 주 예수님에 의해 정복당해 왔습니다. 마침내 그가 불 못에 던지움을 당하기까지 계속 그렇게 우리 주님에게 패배만 당할 것입니다.

Ⅱ. 자, 다음으로 우리는 이런 사실들과 부합되고 있는 우리의 체험을 보기로 합시다.

형제자매들이여, 이미 우리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마는, 우리는 천생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진노를 받을 자들이었습니다. 우리의 양친 부모들이 얼마나 경건했느냐가 문제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 출생은 우리에게 영적인 생명을 안겨다 주지 못했습니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인간의 뜻으로 난 사람들에게는 약속이 해당되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으로부터 난 사람들에게 약속이 해당됩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요3:6).
여러분은 이 육을 별달리 다른 것으로 만들 재간이 없습니다. 육은 그대로 있습니다. 육, 또는 육적 생각은 사망 안에 있습니다.
“육은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하며 실로 할 수도 없습니다,”
단 한번 이 세상에 출생한 경험만 있는 사람, 그리하여 중생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뱀의 후손 가운데 놓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중생에 의해서만 우리는 우리 자신이 참된 후손임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가 부르시고 택하신 자들인 우리를 어떻게 다루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은 이 목적을 수행해 내시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행하신 첫째 일은 하나님께서 자비 가운데서, 우리에게 오시사 우리와 뱀과를 원수 되게 하신 일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은혜의 시작이올시다. 우리와 사단 사이에는 한때 평화가 있었습니다. 사단이 시험했을 때 우리는 순종했습니다. 사단이 가르치는 것이 비록 무엇이든 다 믿었습니다. 우리는 사단의 말을 고분고분히 듣는 그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형제들이여, 여러분들은 무엇보다 먼저 여러분께서 불안해하고, 불만해 하기 시작하던 때를 회상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쾌락이 더 이상 여러분을 즐겁게 해 주지 못했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린다면 여러분은 사과에서 단 맛은 다 빠져버리고, 남은 것이란 맛도 없는 사과 응어리뿐인 체험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놈의 맛없는 사과 응어리를 먹을 수 없게 된 체험을 지녔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갑자기 인식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죄 가운데서 살아왔다는 사실이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 죄로 인해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죄를 제거할 수는 없지만 이 죄를 이젠 증오하고, 죄를 인해 한숨을 쉬며, 부르짖으며 울었습니다. 여러분 마음의 한 복판에는 더 이상 악의 편을 들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7:24)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옛 것에서 나와 여자의 후손이 되게 정해 놓은 은혜의 언약 안으로 들어 왔던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이 여러분에게 부여되고, 여러분 안에서 역사하는 생명 안에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무한히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영혼 속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부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몰랐습니다마는 그 생명이 거기 있었으며, 하늘의 불꽃이 반짝이고 있어서 그것이 살아있고, 썩지 않은 채 영원히 거하는 씨앗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죄를 증오하기 시작했으며, 살을 에워내던 멍에 아래 있던 것처럼 죄아래 있던 것을 슬퍼했습니다. 죄가 여러분을 괴롭힐수록 여러분은 그 죄를 감당할 수가 없어, 증오의 생각이 불타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이런 귀한 체험을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 않으십니까?
여러분과 지금도 뱀의 원수가 되어 있지요?
실로 여러분은 보다 철저하게 맹약한 악의 원수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악의 원수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쁘게 시인하고 있습니다. (악의 친구가 아니라 원수가 되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 다음엔 승리자가 왔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영광의 소망이 되셨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에 대해 들었으며 그에 관한 진리를 이해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대속자가 되셨고, 여러분을 대신해서 서 계시며, 여러분의 죄를 지시고, 또 그 죄의 모든 저주와 형벌을 담당하셨다는 사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그리스도의 의, 곧 그리스도 자신을 주시사 여러분으로 하여금 구원을 받도록 했다는 이 사실이야말로 하나의 놀라운 일입니다. 죄가 어떻게 전복된 것을 여러분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이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순간, 율법이 할 수 없었던 일, 육이 연약해서 어쩔 수 없었던 것을 그리스도는 능히 성취하실 수 있었으며, 여러분이 매여서 종노릇해 왔으나 이제는 증오하고 있는 그 죄의 권세와 사단이,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정복하시러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이젠 부서지고 파멸되었으며 또 되고 말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발꿈치가 상하게 된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으며, 뱀의 적대심이 그리스도 안에 해놓은 일을 어떻게 놀랍게 서서 바라보게 되었는지를 기억하십니까?
여러분은 친히 상처받은 발꿈치를 느껴보지 아니하십니까?
죄가 여러분을 괴롭히지 않던가요?
죄의 생각이 여러분을 괴롭히지는 않던가요?
여러분의 마음이 여러분에겐 하나의 천벌은 아니던가요?
사단이 여러분을 시험하려고 하지는 않던가요?
사단이 불경건한 생각을 주입하며 여러분으로 하여금 절망하도록 강요하지 않던가요?
그리고 그놈의 사단이 하나님의 존재와, 또 하나님의 자비와, 여러분의 구원의 가능성 기타 등등을 의심하게 만들지는 않던가요?
이것이 곧 사단이 여러분의 발꿈치를 물어뜯는 소행이올시다. 사단이란 놈은 아직 옛날의 계략을 쓰고 있습니다. 그놈은 자기의 적의를 가지고는 파멸할 수 없는 사람을 이모저모로 괴롭힙니다. 여러분의 세상 친구가 여러분을 괴롭히지는 않던가요?
여러분의 세상 친구들이 자기들의 성미에 비추어보아, 무언가 이상하고 생소한 것을 여러분에게서부터 발견했다는 이유로 해서, 여러분에게 차갑게 대하지는 아니하던가요?
그들은 여러분의 행동을 공상적이니, 교만하니, 완고하니, 편협하니 등등으로 돌리지는 아니하던가요?
아, 이런 핍박은 뱀의 후손이 여자의 후손을 발견하기 시작해서, 다시 옛 싸움을 벌이려고 할 때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갈4:29)라고 했습니다.
참된 경건은 육을 따라 난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럽지 못하고 이상할 것입니다. 그들은 이것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스미드 필드(영국 런던의 유명한 식육시장~역자 주)에는 무슨 돈내기 시합이 있는 것도 아니며, 런던탑에는 무슨 그물 선반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마는, 어이된 판인지 그리스도와 그의 후손에 대해 가지는 인간 마음의 적개심은 바로 꼭 그렇습니다. 흔히 인간 마음의 그런 적개심은 “잔인한 희롱의 시련”속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연약한 마음으로서는 감내하기 무척 힘이 듭니다. 그러나 여자의 영화로우신 그 후손의 발꿈치가 상했던 것처럼, 여러분의 발꿈치가 역시 상처를 받고 있는 중인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들이여, 또 다른 일면의 사실도 알고 계십니까?
다시 말하면, 뱀의 머리가 우리 안에서 상하고 말았기 때문에, 우리가 승리를 거둔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말씀하시렵니까?
여러분 안에서는 죄의 권세와 통치가 박살나지 아니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께로부터 낳기 때문에 범죄할 수 없다는 사실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과거에 여러분을 지배하던 어떤 죄들이 지금은 여러분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나는 하나님에게 모독적인 욕설을 퍼붓던 한 사람을 알고 있었는데, 그가 믿는 순간부터 도무지 그런 말을 내놓지 않더군요.
우리는 술취하는 버릇에서 그가 구출 받은 사람을 알고 있는데,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고침을 받자 아주 놀랍고 온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불결한 삶을 살던 사람을 알고 있었는데, 그가 구출을 받자 곧 정숙하고 순결한 삶을 영위했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옛 뱀을 일격하니, 그 뱀은 그런 불결한 생활에 그들을 더 이상 머물러 있도록 할 힘을 상실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택한 씨도 범죄하고 그것으로 인해 슬퍼합니다마는 죄의 노예는 아닙니다. 택한 씨의 마음은 죄를 추구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것을 내가 행한다”고 고백하기는 때때로 합니다마는, 그들이 그렇게 말할 때는 심히 곤고합니다. 그들은 그들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범에 동의해서 그 법이 선하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 법에 순종하게 되기를 원하며 부르짖으며 애타게 굽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더 이상 죄의 노예로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뱀의 통치권은 택함 받은 사람들 속에서는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이렇게 깨어진 것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죄의 허물이 사라진 것을 말합니다. 뱀의 큰 권세는 사함 받지 않은 죄속에서나 행사하고 있습니다. 뱀의 외치기를 “두고 보자, 나는 너를 죄로 삼았다. 나는 너를 저주 아래로 이끌고 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마구 외치게 됩니다.
“천만에 말이다. 이놈아, 우리는 저주에서 벗어나 지금 이렇게 축복을 받고 있다.”
성경에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롬4:7)라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의 죄에 거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택하신 자를 고소하는 자 트집을 잡는 자가 누구냐? 그리스도께서 의롭게 하셨는데 정죄할 자가 누구냐?
여기 옛 뱀의 대갈통을 후려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뱀은 더 이상 결코 회복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주 우리에게 알도록 허락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험을 이긴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말하며, 원수의 대갈통을 박살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게 하는 일입니다. 사단은 우리를 많은 먹이를 가지고 유혹합니다. 사단은 우리의 핵심을 잘 검토합니다. 사단은 육체의 약점을 잘 압니다.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시다. 그것은 우리가 수없이 사단을 완전 정복하여 그를 영원한 수치에 처하게 했으니 말입니다!
마귀는 욥을 넘어뜨리려하여 그를 잿더미에 떨어지게 하고, 모든 재산을 빼앗으며, 부스럼으로 온 몸을 덮이기만 하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줄로 분명코 생각했으나, 결국 욥을 굴복시키지 못했습니다.
욥은 “비록 하나님이 나를 죽인다하더라도 내가 하나님을 의탁하노라”고 외칠 때에 사단을 정복한 것입니다. 아무리 연약한 사람이라도 바람을 일으키며, 집을 넘어뜨리며, 그 집안에서 잔치하고 있는 가족을 멸할 수 있는 위력의 마귀를 멸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비록 마귀로서 공중의 권세 잡은 임금이라 할지라도, 족장은 그를 이기고 말았습니다. 비록 그 족장으로 말한다면 온 몸에 악창을 지니고,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잿더미에 가련하게 앉아 있는 여인의 후손입니다마는, 내적 생명의 힘을 인하여 능히 마귀를 이겨 승리한 것입니다.

“너희 하나님의 아들들아
마귀의 진노를 대적하라
힘내어 대항하라.
마귀는 사라지고 말지니라.
우리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사 오직 마귀를 멸하셨도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우리들은 우리 안에 있는 죄인 실체가 파멸될 이런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흠이나 주름 잡힌 것이나 기타 그런 것들이 조금도 없이 될 날이 올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타락과 또 사단의 모든 음모가 무엇이든 우리는 조금도 해를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 보좌 앞에 서게 될 날이 오고야 말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 보좌 앞에 허물이 없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과연 어떠한 승리일까요!
“하나님께서 속히 너희 발밑에서 사단을 밟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원하시는 대로 여러분을 완전케 하시고, 모든 죄에서 자유케 하실 때에, 여러분은 뱀의 머리를 참으로 상하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부활로 인해서도 뱀의 머리는 상하게 될 것입니다. 즉, 사단이란 놈이 여러분께서 마치 향수탕에서 목욕을 하고, 향내를 내며 나오는 사람처럼 무덤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을 볼 때에, 또 여러분의 썩고 연약한 것으로 심었던 바로 그 동일한 몸이 썩지 않고, 능력의 몸으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일어나는 것을 사단이란 놈이 볼 때에, 그놈은 무한히 원통함을 느낄 것이며, 그놈의 대갈통이 여자의 후손에 의해 상함을 받은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나는 더 부가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중 누구든지 영혼을 구원하는데에 유용한 사람이 되려고 할 때는, 언제나 우리는 말하자면 뱀의 머리가 상한 사실을 거듭 반복해 주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자매여, 자매께서 사단이 어린이들을 자기 밥으로 삼으며, 도둑놈과 죄수들로 만들려고 하는 저 수렁으로 내려가서, 그 어린이들을 직접 이끌어 내어, 비로소 자매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어린 방랑 아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에, 그때는 자매께서도 자매 나름대로 옛 뱀의 머리를 상한 것입니다. 또 우리가 복음을 전함으로 해서 죄인들을 그들의 나쁜 길에서 돌아서게 하여, 그들이 암흑의 권세에서 탈피할 때에, 그때도 우리는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 것입니다. 비록 여러분이 어떤 모양이나 어떤 방법으로든 언제든지, 당신께서 복스럽게도 이 세상에다가 진리와 의를 거하게 했을 때는, 여러분도 과거에 한 때는 사단의 권세아래 있었으나, 지금은 사단에서 벗어나자 오히려 사단이 여러분의 발꿈치를 물어 뜯음으로 인해서 고통을 당하고 있기는 하지만 뱀의 머리를 짓밟은 것입니다. 이 모든 구출과 승리 안에서 여러분은 이겼으며, 다음과 같은 약속도 진실임이 판명될 것입니다. 그 약속이란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시91:13~14)한 것입니다.

Ⅲ. 우리는 잠시 동안 우리의 현재 본문과 문맥이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격려를 말씀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나에게는 아주 충분한 격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이여, 나는 여러분께서 약속을 실제로 믿으시고, 위로를 받으시기 원하는 바입니다. 본문은 분명히 아담을 많이 격려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말씀하신 이후에 아담의 행동에 대해 우리가 많이 중요시해왔다고는 나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담이 자기의 신앙에 대해 표시했던, 단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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