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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121]
 
 
 
     
 
 
 
작성일 : 13-11-21 15:27
스펄전 설교-창세기(1) 15. 아브라함의 지극히 큰 상급(창 15:1)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57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

아마도 여러분께서는 오늘 본문의 “나는 너의 방패요”라는 처음 구절을 사용해서 행해진 많은 설교를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런 만큼 나는 오늘 이에 대한 설교는 그만 두기로 하고, 둘째 부분인 “나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는 구절을 보다 충분히 고려해 볼까 하는 바입니다.

먼저 이런 말씀이 아브라함에게 내려지게 된 주위 환경부터 주목해 보기로 합시다. 아마도 아브라함의 기억 속에는 얼마 전에 그의 조카 롯과 이별했다는 사실과, 또 그의 조카 롯이 자기의 가축과 일군들을 데리고 가야 할 것을 선택할 권리를, 그에게 먼저 주었던 사실이 잊지 않고 들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은 또 생각나는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즉 롯은 자기가 거할 땅의 사람들의 성품 따위에는 일체 신경을 쓰지 않고, 여리고나 고모라의 배수가 좋은 평지를 택했던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곳 소돔과 고모라의 도성들은 죄투성이었습니다. 롯은 단지 일시적인 유익에만 생각이 잡혔습니다. 지금 그는 다섯 왕을 대항한 4왕의 전투에서 모든 것을 다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왕국을 바라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의를 바라보는 눈도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오히려 아무 것도 잃지 아니했습니다. 사실, 그는 롯이 잃어버렸던 것을 그대로 롯에게 갖다 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너 조카 롯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었구나. 그는 자기 판단대로 따르고 말았구나. 그리고 자기 자신의 손쉬운 유익이 된다고 보이는 것만 택했구나. 그러니 그는 지금 모든 것을 잃고 말았지 뭐냐? 그러나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너는 손실 볼 것이 없다. 너는 좋은 편을 택했구나. 그것은 너에게서 떠나지 아니할 것이로다. 그러니 너는 걱정할 것이 없다. 너는 너의 몫을 영원히 결코 상실하지 않을 것이로다.”
아마도 아브람 족장은 자기 스스로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요 내가 그를 의탁하노라고 내 영혼이 말하는도다”하고 소리소리 외쳤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마도 여러분은 모든 것을 상실하게 됨으로 받는 고통을 보아왔을 것입니다. 그 결과 심히 깊은 절망에 처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생겨도 여러분은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께서 하나님을 여러분의 피난처로 정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안에서 아주 확고한 거처를 정했기 때문입니다. 혹 여러분은 손실도 당하고 고통도 당했겠지요. 이런 것들은 모두 다 여러분의 몫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여러분을 꼼짝 못하게 넘어뜨리지는 못합니다. 여러분이야말로 결과적으로 보아서 결코 참된 의미로 손실을 본 사람은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분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야말로 갖가지 시련과 고통에서 구출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도 방패가 되시며, 또 여러분의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십니다. 

다시 한 번 봅시다. 아브라함은 바로 그 당시에 소돔 왕의 선물을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그 선물들은 의당히 아브람이 취할 권리가 있는 전리품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당연히 그것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그렇게 하지 아니했습니다. 그것은 나중에 소돔 왕이 다음과 같이 주책스러운 말을 꺼낼까봐 조심한 때문입니다.
즉 “아브라함을 치부케 한 것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아니다. 그가 믿음으로 살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없는 일이다. 그가 부자가 된 것은 내가 준 선물 또는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 때문이니라”고 소돔 왕이 지껄일 것을 우려한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사실에 대해 강경한 태도였습니다.
“아니다. 너는 결코 그 따위 말은 할 수가 없다. 내 가진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내게 준 선물이다. 결코 소돔 왕의 선물이 아니다. 나는 사람을 의탁하지 않노라. 나는 다만 살아 계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노라”고 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 정신을 칭찬하시고 그에게 오시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브람아, 두려워말라 네가 단념한 것은 무엇이나 다 나를 위함이었다. 곧 나의 영광을 위함이었다. 나의 명예를 위함이었다. 그런즉 너는 어느 면으로나 손실을 당하는 자가 아니니라. 왜냐하면 내가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기 때문이노라.”

사랑하는 친구여,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어떤 희생을 치루어 보았습니까?
여러분은 최근에 소명을 받아 옳은 길을 추구함으로 인해서, 여러분 자신의 유익을 손실당하신 경험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은 우정을 잃을지라도 끄덕도 하지 않고 있으십니까?
여러분은 원리원칙에 집착하던 나머지 옹고집쟁이라는 판단은 받지 아니했습니까?
좋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러하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그 신실함으로 말미암아 결코 손실을 당한 자는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계심이 틀림이 없듯이, 여러분도 이런 저런 방법으로 계명을 지켰기 때문에 큰 상급이 있을 것이 증거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들이 소돔 왕의 도움으로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또는 세상의 불경건한 사람들 가운데서 다소라도 자기의 분깃을 찾으려고 발버둥칠 때야말로 실로 유감천만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은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후6:17).
이렇게 행하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6:17~18).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땅을 다 주시며, 축복해 주신다고 말씀하셨을 당시의 아브라함의 상태를 보면, 그는 약속받은 땅이라고는 단 한치도 소유하지 아니하고 있었더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합니다. 당시 땅을 소유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단지 땅을 차용한 자에 불과하며, 그들의 차용권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당시 자기 소유라고 불리우는 땅이라고는 그나마 하나도 없었던 것입니다. 오죽하면 그가 매장지를 필요로 했었을 때, 에브론의 들판에 있는 막벨라 굴을 사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을까요? 그것도 헷족속 가운데 앉아있던 에브론의 들판을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아, 너는 이 땅에 소유라고는 없구나. 너는 이 땅에서 낯선 객이요 외국인이구나. 그러나 ‘두려워 말라’ 내가 너의 소유요 유업이니라.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 비록 다른 사람들은 너를 양떼와 가축떼를 거닐고 유랑하는 목축인으로 볼지 모른다. 그리고 네가 장막을 오늘은 여기에, 내일은 저기에 치면서 일정한 정주지도 없이 돌아다니는 유랑민으로 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조금도 걱정하지는 말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는 모든 세대에 걸쳐 하나님의 백성의 거처가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거처이듯이 모든 하나님의 백성의 거처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그 사실을 알도록 하십니다. 또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그가 일전 한 푼도 없는 자도 아니거니와, 땅이 없는 자도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도록 만들어 줍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지극히 큰 상급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만한 귀한 장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10분의 1을 바치고 있었던 장면입니다. 그래서 그때야말로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내려주던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10)는 본문을 가지고 설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나는 이상의 구절을 가지고 강론하는 것을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이상의 구절은 어느 일부가 빠져있습니다.
즉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말3:10)라는 것이 빠졌습니다. 이것을 빠뜨린 본문을 가지고 행해진 설교야말로 완전하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과연 축복을 받아서 하나님께서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여, 하나님의 풍족한 것으로 저들의 창고와 집을 가득 채우게 되는 때가 언제이냐 하는 시험은, 온전한 십일조를 가져오는 경우였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를 봅시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대표자인 멜기세덱에게 모든 것의 십일조를 바쳤습니다. 그러자 축복이 내렸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과연 솔로몬의 다음과 같은 말은 진실입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잠11:24).
이 세상에서 돈이 없어 쩔쩔매게 되는 경우는 하나님의 돈을 자기 창고에 가두어 두는 행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의 은사들을 녹슬고 상하게 맡겨놓는 것이나 매한가지입니다. 자기 창고에 넣은 것이 원래 전연 자기의 소유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주인의 것을 도둑질하고 또 착복한 것입니다. 자기 의도는 좀 더 축적하려고 했지만, 결과는 조금 더 부자가 되어 죽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자기의 청지기 직분에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오, 형제들이여, 이런 사실들을 여러분 혹자에게는 해당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여겨 말하지 않아도 될지 모르나,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요, 하나님의 뜻인 만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앙고백을 한 많은 사람들이 이 의무를 소홀히 해서 벌을 받은 사람이 많은 것을 볼 때에, 우리는 필히 이 문제를 가지고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문제를 두고 하나님께 신실하게 봉사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물질의 축복을 주사 여러분이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게 되며, 또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자기희생과 자기 부인이 얼마나 고귀한가를 가르쳐 주시며, 여러분이 가진 바 물질을 하나님께 어떻게 바쳐야 할까도 보여 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오늘 본문의 말씀을 들려주실 때의 환경이 이상과 같았습니다.
“나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는 본문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먼저 우리는 이 상급이 무엇이며,
둘째로 이 지극히 큰 상급의 우수성이 무엇이며,
셋째로는 이 상급의 결과가 어떠했는가를 차례로 볼까 합니다.

Ⅰ. 첫째로, 이 상급은 무엇이냐? 라는 문제부터 알아보고자 합니다.

본문의 말씀 “나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
그것은 가나안의 땅은 아닙니다. 가나안 땅이 아브라함에게 준 바 되었지만, 그러나 그 땅이 그의 지극히 큰 상급은 아닙니다. 그 큰 상급은 아브라함의 자손도 아닙니다. 물론 아브라함이 자손을 무척 동경한 것만은 사실이지요. 그렇습니다. 이 지극히 큰 상급이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줄 어떤 물건은 아닙니다. 그 상급은 바로 곧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나, 나~여호와로다. 히브리어에서 이렇게 말을 구분해서 놓는다는 것은 아주 특별하게 어떤 사실을 강조하는 경우입니다.
“나, 여호와가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
여호와 자신이 그 백성들의 분깃입니다. 가나안 땅을 분할했을 때에, 유다에게도, 시므온에게도, 그리고 르우벤에게도 분할지가 다 있었습니다. 그러나 레위지파에게는 분할지가 따로 있지 아니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유업이었습니다. 우리는 다 레위인과 같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모두 레위인과 같습니다. 그리하여 더도 말고 하나님이 우리의 분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기타 어떤 물건보다도 더 월등하신 우리의 유업입니다.

“나는 너의 상급이라”~즉 하나님 자신이 그의 신실한 백성들의 상급이라는 말의 온전한 의미를 온전히 파악할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나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것을 확신합니다. 나도 이 본문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즐기고 있습니다마는, 나의 연약한 입술은 이 본문의 귀한 의미를 백분의 일도 다 말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나 같은 사람을 의탁하지 마시고 여러분 스스로 본문에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여러분을 위해서 요리하고 자르는 것으로 족하게 생각지 말고, 여러분 스스로가 칼을 들고 살을 베며 큰 조각을 떼어내기 바랍니다. 여러분 각자가 이 귀한 본문을 생각하는 가운데서 이 본문에서 모든 것을 취해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라도 한 것이 얼마나 굉장한 상급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몇 년 전, 우리는 어떤 하나님이 존재하셨음을 알았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하나님이 우리에게는 도무지 생소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혹 식사 기도시에 복을 달라고 간청하기도 했으나, 죄다 그것은 하나의 형식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는 만사에 하나님의 손길이 뻗쳐있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사실 말이지, 우리는 하나님도 없는 사람처럼 살았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어쩌면 더 행복했었을지도 모릅니다(마음대로 살아가기나 했을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과, 하나님이 인간을 지켜주시는 분이라는 것과, 우리가 모든 섭리의 은사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되었다는 것을 압니다. 땅을 밟고 거닐 때에 우리는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이것 모두가 하나님의 영화로운 작품이로다. 내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다. 꽃 하나하나를 그리신 하나님의 연필이 여기 있구나. 하나님은 바람 날개를 타시고 바다의 물결을 타시는구나. 우리가 어디를 보아도 하나님이 계시는 구나.”
“내 하나님이 어디나 계시는 구나”라고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인생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말합니다. 

아마도 여러분께서는 문고 파크(Mungo Park)에 관한 단순한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가 아프리카에서 길을 잃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 정신을 가다듬고 작은 이끼조각을 보고 그것의 아름다움을 찬탄하며 이르기를 “아하, 여기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는구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하기를 하나님이 이렇게 계신다면, 자기는 참으로 길을 잃은 사람이 아니며, 아직도 넉넉히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 하늘 아버지께서 가까이 계셔주신다고 생각한 때문입니다.
우리가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인식하는 단계에 이르고, 또 만유 가운데서 만유를 충만케 하시는 저 영화로우신 하나님과 친분을 맺으며 사는 삶이란 실로 가치 있는 삶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 이외에 기타 다른 상급은 결코 없다 손치더라도, 다만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을 소유한다는 이 사실만으로 과연 위대한 상급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데서 이젠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로 계속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 일이 보다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전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비록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다만 나로 하여금 영원히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내게 허락만 해 주신다면, 나는 이것으로 마냥 행복하겠나이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지극히 복된 감정이라는 사실을 기필코 아셔야 합니다. 모든 하나님의 우월하심과 자비하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여러분의 입술로 하나님을 완전하게 다 찬양할 수 없음을 인식할 때, 또는 여러분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을 다 헤아려 생각할 수 없음을 인식할 때, 이것이야말로 지극히 유익된 체험일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황홀한 기쁨인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충만된 마음을 가지고 비록 동굴에 평생을 산다 할지라도, 그러한 삶의 경험은 결단코 불행이 아니라 행복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배후엔 좀 더 위대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형제들이여,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나로서는 이 위대한 진리에 관해 구태여 이러쿵저러쿵 감히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말하기보다는 생각해야 할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이 귀한 진리를 나는 다만 어느 한 구석에 조용히 들어가서 그저 달콤하게 입안에 넣고 마냥 음미하면서 빨아 먹고 싶을 따름입니다. 그리하여 끝내 “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도다”라고 핵심적인 말을 털어놓을 것뿐입니다. 이렇게 찬송 가사도 읊어볼 것입니다.

예수 날 사랑하시니 나 항상 기쁘다.

하나님께서 나를 생각해 주시는 것도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동정하시는 것은 더 한층 대단한 일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신다는 것은 보다 더 한층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모든 것 가운데 최대의 경이입니다. 비록 여러분이 악하지만 여러분에게 따른 자녀들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지를 아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하늘 아버지는 그것보다 더 많이 여러분을 사랑해 주십니다. 남편된 여러분께서는 여러분의 아내들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지를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교회를 보다 더 사랑하시는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는 교회를 위해 자신을 던졌습니다. 하나님은 내 형제 자매되시는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어 오셨을진대 그렇게 사랑해 주십니다. 이 위대한 진리를 안다는 것은 “지극히 큰 상급”을 가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면, 만사가 잘 된 것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행하셨는가를 계속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행하신 일을 세부적으로 파고 들어가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거의 어리석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왜냐고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실진대, 기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지 아니한 일들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미래에 행하실 수 있는 일 이상으로 이미 현재에도 많이 완료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그의 최대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기의 아드님을 주셨으니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심으로 사실은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하늘 아버지는 하나님의 귀한 자녀인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러분을 계속 먹이시고, 입히시고, 가르치시고, 보호하시고, 교육하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복된 얼굴을 만나보도록 해 줍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훈련장에만 있을 것이 아니라, 본향에 들어가서 영원히 복된 하나님과 같이 거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하나님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이 사실이야말로 “지극히 큰 상급”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런 사실 이상의 일도 소유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에 이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하나님을 영원토록 우리의 하나님이시라”고 말하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 주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내 사랑하는 자는 내 것이요 나는 그의 것이로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도마처럼 주님 앞에 머리를 숙이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외칩니다.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우리는 잠시 동안 시간을 내어 하나님을 소유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의 인격에 속한 무엇이나 모두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여러분을 강건하게 만드는 보증이 되고, 하나님의 전지하심은 여러분을 이끄는 인도가 됩니다. 모든 하나님의 속성들이 여러분을 위해서 총동원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디나 현존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어디서나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셔서 강력하게 여러분을 방어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불변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일에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비는 영원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어떤 엄한 속성도 성도를 향해서 미소를 짓습니다.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영광 등 모든 것들이 다 개개의 신자들을 편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혹 “나는 가난하다”라고 말할지 모르나, 그토록 부하신 하나님을 모시고도 어떻게 가난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나는 부귀영화가 없기 때문에 마음이 심히 괴롭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여러분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있으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을 여러분의 편에 속한 분들로 모시고 있으며, 천지를 창조하신 영원하신 하나님을 여러분의 아버지와 친구로 영원무궁토록 모시고 있는 처지인데, 어째서 여러분의 주위 환경이 좀 곤란하고 빈곤하다는 이유로 그토록 상심하시는 것입니까?
형제여, 여러분은 마음의 그 어리석음을 꾸짖으시고, 이젠 한숨도 거두시고, 다만 노래만 부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소유로 모시고 있는 이상 그야말로 우리는 “지극히 큰 상급”을 소유한 것입니다.

그런데 상급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 커져가기만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가 우리를 변하게 하사 적어도 부분적으로나마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우리의 하나님이신고로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 또 하나님의 거룩한 영향력을 받아 마침내 그의 형상을 닮습니다. 물론 이것은 주 성령님에 의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읽어 보셨지만, 하나님의 고상한 종의 인격 속에 반영된 하나님의 많은 속성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자, 하나님의 자녀된 여러분, 여러분은 너무도 하나님을 닮지 못한 사실로 인해 마땅히 슬퍼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미 다소라도 하나님을 닮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마땅히 기뻐하기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을 그 안에 감추고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장차 나타나실 때에, 여러분은 주와 같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께서 주를 있는 그대로 보게 되겠기 때문입니다. 아, 그렇게 산다는 것은 가치 있는 일입니다. 비록 세상살이에 많은 고통은 있다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이 끝나고 말 것이 아니겠습니까?
비록 인간은 필연적으로 고통 속에 출생된 존재자이기는 하지만, 이 고통이 끝나고 마지막에 우리는 하나님을 닮은 형상에 참여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자녀로 높이 들림을 받아, 영원무궁토록 하나님과 더불어 거한다는 이 사실이 마냥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혼을 휘감고 있는 영원한 진노의 무서운 위험에도 불구하고, 영혼 불멸의 위대한 진리를 제공해 주신데 대해 나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과 같은 형상을 닮으려는 가능성을 가져본다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모험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어오고 있는 우리는 그런 가능성을 넘어서 나아가고 있으니, 곧 우리는 우리 안에서 시작된 착한 일에 대한 열심과 확신과 보증과 증거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시작된 이 착한 일이 완성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가 될 것입니다.

오, 내 영혼아, 경외와 감사로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일지어다! 여러분은 본질상으로는 거의 마귀와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흙과 하나님의 성품이 함께 혼합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님이 여러분 안에 계신다는 말씀이지요. 여러분의 몸은 흙으로 산산조각이 나고야 말겠지만, 그러나 앞으로 그것은 점점 영화와 능력 안에서 새로 변형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비록 여러분과 같은 피조물이라 할지라도, 여러분은 하나님과 가깝고 또 닮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즉 지금은 최고의 경지로 향해 나아가는 준비과정에 있다하지만, 그렇게 하나님을 닮아 가까이 나아간다는 것이야말로 “지극히 큰 상급”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는 사실을 다른 각도에서 또 언급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황송스럽게도 우리를 방문하셔서 우리와 더불어 말씀하신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향력으로 이미 감화를 받아왔습니다. 내가 지금 친히 말하고 있는 대상은 위로부터 거듭나서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믿는 자가 되신 여러분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미 여러분에게 위대한 상급을 부여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죄의 죽음에서 일으키시고, 하나님의 성령님이 여러분 안에 거하셔서 여러분을 완전하게 만드시고, 변화시키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주 여러분과 말씀해 오신 줄로 나는 믿습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것은 누구의 과실일까요? 우리 가운데 혹자들은 하나님께서 때때로 우리 영혼에 아주 가까이 나오신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기쁨을 감내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쁨을 느껴보신 어떤 행복한 시절을 기억할 수 없습니까?
제가 드리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즉 여러분이 너무너무 기쁜 나머지, 이젠 조금만 더 기쁘면 견디지 못하고 기쁨의 극치에 이르러, 죽지나 않을까 할 정도로 위험을 느낄 만큼 기뻐해 본 때가 있었느냐 말입니다. 오, 그런 지극한 기쁨이야말로 형언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영혼이 느끼는 하늘의 기쁨이올시다. 영혼 속에 찾아오신 성령님에 의해 마음속에 가득 부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영혼이 느낄 때의 기쁨인 것입니다.

Ⅱ. 이상의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계속하고 싶으나 시간이 허락지 않는군요. 이젠 둘째 문제로 나아갑시다. 본문에 약속된 그 큰 상급의 우수성이 무엇일까요?

첫째로 그것은 무한한 상급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해 봅시다.
“나는 너의 상급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꺼이 주시고자 하는 것이 세상적인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취할 수도 있고 옮겨갈 수도 있고, 또 어느 곳으로 이주해 놓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가 너의 상급이라”고 말씀하실 때에는, 우리는 그 자리에 서서 경이와 사랑과 찬양의 혼합된 심정으로 바라봅니다. 이 상급은 헤아려 다 알수가 없습니다.
누구라서 이 상급을 가져가겠습니까?
누구라서 이 상급을 측정할 수 있습니까?
누구라서 이 바다의 깊이를 재며 이 거대한 높이를 올라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어떤 다른 사람에게는 건강과 재산과 명예와 쾌락을 주기도 합니다마는, 사랑하는 여러분에게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을 주십니다. 다른 사람이 받은 선물들을 여러분이 받은 선물에 비교하면, 어두움을 태양에 비교하는 것만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을 여러분에게 드린다고 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모든 인격을 드린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진실로 이런 것이야말로 무한한 분깃입니다.

다음, 이것은 영적인 상급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상급은 너무도 우월해서 가치를 결정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런 상급은 중생한 자들과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과를 구별해 보는 시험이 되기도 합니다. 경건치 못한 불신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 곡간에 곡식을 가득하게 하고, 포도주 틀에 언제나 새 포도주를 흐르게 하고, 우리의 지갑에 황금이 꽉 차게 하고, 우리의 집이 온통 땅의 기쁨으로 충만하게 채워주기만 한다면, 우리는 이것으로 족할테다.”
그러나 믿는 여러분들은 그런 것과는 판이한 생각을 지닐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든 물질적인 것의 허무함과 공허를 체험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내가 짐승과 짝해서 단지 먹고 마시는 기쁨이 무엇인가? 
내가 인생 가운데서 명예를 얻는다한들 그게 다 무엇인가?
사람의 콧김에까지 내가 들먹이며, 어리석은 사람의 박수를 받는 존재가 된들 그게 다 무엇인가?
그것은 단지 그런데 그치고 만다”라고 말합니다. 혀 아래서 하는 일이 다 무엇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거듭난 사람에게는 해 아래서 사람들이 하는 일이란, 해를 따르려다가 허리를 굽히는 일 외는 아무것도 아닙니다(얼토당토 않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신 사람, 그리하여 자기 안에 새로 난 영을 가져서 최고의 선을 무한히 갈구하고 있는 사람의 말은 이렇습니다.
“여기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다 갖고 있구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 축복의 삼위일체 하나님이 곧 내 것이로다, 나의 잠을 깬 영은 이것이 바로 곧 내가 헤엄쳐 나갈 바다임을 안다. 이것이 내가 참으로 살아갈 요소이구나.”
하나님을 모신다는 것은 하나의 위대한 영적 축복입니다. 그런즉 본문의 선언은 지당합니다. 
“나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다음으로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이것은 영원한 상급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있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다시 잃는 법이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변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고갈되게 하지도 못합니다. 도대체 여호와의 무한하신 풍족하심을 여호와께서 고갈시킬 것이라고 누구라서 감히 생각인들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이시면, 여러분은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입니다. 오늘과 내일과 짧은 현세와 영원에 대비해서 모든 것을 가진 것입니다. 인생살이의 갖가지 긴급한 경우와 기타 여러 환경에 대비해서 모든 것을 가진 것입니다. 심판의 날의 무서운 전율에 대비해서도 만반의 준비를 갖춘 것입니다. 끝없이 계속할 여러 가지의 오는 세대에 대비해서 모든 것을 가진 것입니다. 자, 그런데도 여러분이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모시면 여러분은 또한 대단한 귀인이 됩니다.
나는 많은 재산이 있다고 해서 사람을 고상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고는 알지 못합니다. 욕심이 많은 것으로 보이는 사람일수록 더욱더 많은 돈을 가지나, 그들의 영혼은 흙에만 붙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굉장한 특권을 누리고 있는 사람인지 모릅니다! 왕자들을 두고 말합니다마는, 과연 여기 참왕자가 있습니다. 땅의 황제들과 위인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기타 원하는 대로 여러 사람들을 한 부류에 소속시켜 놓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사람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지 못했다면, 하나님의 눈으로 보시기엔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가장 가난하고, 연약하고, 멸시받는 사람들과 비교해 보아도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은 “지극히 큰 상급”이기 때문입니다. 
오, 이 세상에서 위대하시다는 여러분이여, 여러분께서 하나님을 여러분의 영원한 유업으로 받으신다면 비록 여기서 거하게 된다해도 만족하셔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영혼을 만족케 하는 분깃이며 상급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분깃이 되어 있을 경우라면, 어디 내 영혼이 조용히 앉아서 기타 어떤 것을 더 요청해 볼 것이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이면 족했지 달리 더 다른 것을 요청치 아니할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대로 욕구를 내어 보십시오. 가령 그 욕구로 하여금 온 들판을 거닐고 자유롭게 배회하도록 풀어놓아 보십시오. 그러나 여러분의 욕구는 하나님 외에 간구하고 추구하고 소원할 것이란 또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어이된 판입니까? 어떤 그리스도인 중에는 이 진리를 인식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을 만족하게 여기지 않고 불만해 합니다. 내 형제나 자매되시는 여러분은 그저 몇 달 동안은 주님을 잘 섬겨왔겠지요. 아마도 여러분이 봉사해온 곳은 교회학교 안에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주목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며, 교회 지도자가 여러분을 칭찬해 주지 않으면 그만 실망에 빠집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을 섬길 때에 하나님이 여러분의 상급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하십시오.

“좋습니다. 그러나 목사님, 나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착한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나는 열심히 일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고작 내게 대하는 태도는 오해뿐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런 식으로 보상을 찾았단 말입니까?
만약 그러했다면 나는 여러분이 실망하게 된 것을 오히려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너의 상급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도 여러분을 사랑하며, 또 하나님이 여러분의 것이요, 여러분은 또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여러분에게는 풍족한 보상인 것입니다. 어떤 사역자가 나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내가 얼마나 학대를 받아 온 줄을 참으로 모르고 계시는군요. 나는 내 교회 교인들 가운데서 여러 해 동안 목회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렇건만 그들은 나에게 너무도 불손하며 감사할 줄도 모르더군요. 어쩌면 나를 내어 쫓았으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형제여, 하나님은 당신을 내어 쫓으시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인정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무한한 사랑으로 사랑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형제는 당신의 상급을 사람에게서 찾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자기의 상급으로 모시고 만족을 누리는 사람이라도, 물론 기타 많은 상급을 소유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는 가운데 있지만, 어떤 부정하고도 부수적인 목적을 가진 사람은 상급을 상실하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귀한 고약에 붙은 파리와 같습니다. 그런즉 우리는 이런 따위의 시시한 것은 모두 제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대중들의 박수갈채 속에서 하나님을 섬겨야 할 때에도 있지만, 욕과 비난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마땅히 만족해야 하는 것입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그렇게 하기란 쉽지 않더군요”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선한 것은 무엇이나 그리 쉬운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에게는 예외입니다. 그런즉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선행할 수 있도록 인도해 줄 것을 바라고, 하나님께로 나가셔야 합니다. 그러나 어렵다고 생각해서 해야 할 의무를 피하지는 마십시오. 여러분의 하나님과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으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해 주시며, 위로해 주시며 힘을 주십니다.
엘가나가 자기 아내 한나가 자식이 없어 슬퍼할 때에 어떻게 아내를 위로했던가를 여러분은 기억해 보십시오. 엘가나는 한나에게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고 했습니다. 엘가나 그녀를 자기에게로 가까이 이끌자, 한나는 남편의 애정띤 마음의 따스함이 불붙어옴을 느꼈습니다. 아내는 분명히 그것을 느끼고 평안을 되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피곤하며 슬퍼하고, 실망으로 가득한 개개의 사람을 가까이 이끄시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사람들의 칭찬보다 낫지 않느냐?
내가 너에게 재산보다 낫지 않느냐?
내가 너에게 네가 결국엔 상실하고야 말 건강보다 낫지 않느냐?
내가 너에게 기타 모든 세상보다도 낫지 않느냐?”
여러분은 이런 말에 무엇이라고 답변하시겠습니까? 그 대답은 분명코 다음과 같은 말씀이 될 것입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오, 하나님이시여, 우리를 그런 축복의 자리로 인도하시고 거기에 우리를 지켜주시옵소서! 그리하면 이제 오늘의 본문, 곧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는 의미를 익히 알게 될 것입니다.

Ⅲ. 나의 셋째 질문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면 그 결과는 어떤 것입니까? 하는 문제입니다.

첫째로, 믿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상급들은 은혜로 준 것이지, 빚으로 준 것은 아님이 너무도 명백합니다. 여러분은 본문에서 그 사실을 보지 아니했습니까?
본문을 다시 보시면 곧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백성들의 상급이라고 하지만,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자기의 상급으로 받을 만한 자격이 원래부터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자기 동료의 칭찬은 받을 만한지 모릅니다. 또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실로 자기가 성취한 것만큼 상당한 보상을 받고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만일 사람들이 자기들이 받을 것 이상으로 받아가질 수 있다면 잘된 것입니다. 흔히 마땅히 받아야 할 삯을 못 받고 있는 현실이니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취해야 할 이상으로 많은 돈을 받아가질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상급으로 받아가질 당당한 자격을 가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천국을 마땅히 소유할 만한 자격을 가진다는 것은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만약 천국을 가질 자격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마땅히 취할 자격이 있는 것이나 매한가지 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율법, 공적, 선행에 기초해서 우리에게 오는 큰 분깃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가 너의 상급이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그것은 마땅히 온통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런고로 상급을 얻을 가능성이란 은혜 외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포도원에 들어가서 주인과 하루 일을 하고 정한 노임을 받도록 서로 타협을 했을 경우, 그들은 그 노임을 받습니다. 그러나 상급이 하나님 자신이라고 할 때에, 그 상급을 지금까지 벌고 오거나, 또는 벌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즉, 내 영혼아, 너는 값없이 주는 주권적인 은혜를 찬양할지라. 평생에 그 노래를 부를지어다.

값없이 주는 은혜, 죽기까지 사랑함이여,

이렇게 찬송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받은 분깃은 오직 값없이 주는 부하며, 힘있고 영원한 언약의 은혜에 기초해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양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여러분이 유의해 주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즉 그것은 오늘 우리의 본문에 따라보면, 우리는 확고하게 하나님을 붙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상급을 취할 때에 이젠 그것이 자기의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흥, 내가 이겼으니 빨리 상급을 가져야지”
자, 형제자매들이여, 여러분과 나는 결코 하나님을 나의 상급되시는 하나님으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지금까지 말해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치 우리가 하나님을 일해서 벌어들인 것이나 되는 것처럼, 분명코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상급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시 말하거니와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하나의 상급으로 찾아온 것을 진실로 이젠 자기의 것이 된 것으로 너무도 자신 있게 확신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동일한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에 대하여 용감한 신뢰를 가집시다. 확고한 발판에 서 있는 이상, 우리는 보다 더 자신 있게 신뢰합시다.
“내가 너의 상급이라”고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 아무도 여러분의 상급을 빼앗아가지 못하게 합시다. 어서 굳게 잡으십시오. 마귀가 그것을 뺏지 못하도록 할 것이며, 그 상급 안에 깃들인 여러분의 기쁨을 노략질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 상급은 너무도 자신 있고 안전하게 여러분의 것이 되어 있는 이상, 이제 여러분은 가장 자신 있게 여러분의 상급을 취해서, 언제나 그 상급으로 인해 기뻐하시는 자들이 되셔야 합니다.

또 하나의 실제적인 생각이 여기서 떠오르는군요. 하나님이 우리의 상급이 되신다면 우리는 진실로 하나님을 인해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기뻐합시다. 우리는 하나님을 인해 즐깁시다. 우리는 다른 기쁨을 갈구해 나가지 맙시다. 여러분은 별로 격려 받을 만한 것도 없는 외로운 곳에 가서 살아야 할 경우도 있지만, 계속 하나님을 모시고 있다면, 적적함을 느끼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적인 환경 속으로 들어옵니다. 또는 수입이 적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하나님은 과거와 여전합니다. 그런즉 여러분은 참으로 손실을 당한 자는 아닙니다. 친구들이 하나 둘씩 여러분 곁을 떠납니다. 여러분의 가장 애지중지하던 사람이라도 곧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런즉 이 반석에 찬양을 돌립니다. 하나님을 인해 기뻐합니다. 또 아마도 여러분 자신들이 곧 세상을 떠날지도 모릅니다. 얼마 있지 아니해서 여러분이 이 장막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세월이 말해 주고, 또 갈수록 연약해지는 허약이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러분의 모든 것 가운데 모든 것 되시는 하나님은 죽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여러분의 안식처도 여러분의 분깃도 아닙니다. 여러분은 본향을 향해 떠납니다. 하나님 자신이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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